신부가 Yellow Sky에 오다
Yellow Sky
미국 서부 텍사스주의 Yellow Sky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술에 취한 망나니 스크레취 윌슨(Scratch Wilson)이 휴대한 쌍권총을 들고 온 마을의 거리를 휘저으니, 마을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아 버린다.
윌슨은 잠긴 문을 구둣발로 차면서 술을 내놓으라고 하늘을 향해 마구잡이 총을 쏜다. 그야말로 Yellow Sky라는 작은 마을 전체를 자신의 장난감인 양 가지고 놀며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이 망나니를 해결할 사람은 오직 보안관 Jack Porter뿐이나, 그는 신혼여행을 떠났던 산 안토니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드디어 쌍권총을 든 망나니 Scratch Wilson은 신부를 데리고 이제 막 집에 도착한 보안관 Jack Porter를 마주치자, 보안관에게 총을 빼라고 욕을 하면서 한판 붙자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보안관에게 '신부만 있고 총은 없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끼고, 돌아서서 다진 모래 위에 깔때기 모양의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His feet made funnel-shaped tracks in the heavy sand).
윗글은 Stephen Crane의 작품 ‘신부가 옐로우 스카이에 오다(The Bride comes to Yellow Sky)’를 요약한 것이다.
쌍권총을 든 정의의 사나이가 멋진 총 솜씨로 악당을 단 한 방으로 없애버리는 서부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망나니와 보안관과의 한판의 총싸움을 기대했겠지만 긴 여운과 함께, 다진 모래 위에 인생의 자국만 남기고 조용히 사라지는 망나니 스크레취 윌슨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요?
옛 질서의 소멸과 새 시대의 도래라고나 할까?
어쩌면 우리는 항상 예견된 삶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작가는 독자들이 예상한 상황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상황을 전개하여 시대의 변화를 예고하였던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 것이 아닐까?
인생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항상 일어나거나 잠재되어있는 과도기가 아닐까?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아니 나 자신은 지금 어느 시대, 어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영(游泳)하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면서 사색의 바다에 빠져본다.
현재 우리는 항상 그러하듯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세계는 신보호무역주의라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수입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다. 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고환율의 글로벌 경제질서 속에서 몇몇 기업만 빼고 좀비기업이 되어간다 해도 틀리지 않은 말이다. 언제 회복될지 아무도 모른다.
서울의 부동산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빈부 격차는 어느 시대보다 심하다. 서울과 지방의 경제적 격차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고 안달하고 세금이 많다고 불만이다. 조금 가진 자는 더 가지지 못해서 불만이다. 없는 자는 자포자기한다. 모두의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세상은 어제 예상하지 못한 오늘과 혼돈, 현재의 불만과 미래의 불안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정신 차렸다 싶으면 또 다른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따라가기도 힘겹고 버티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작가가 Yellow Sky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세상이 늘 변하는 과도기가 아닐까.
변하는 속도가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불안정한 과도기에 존재하고 있다.
급변하는 불안정한 과도기의 세상일수록 우리의 삶이 시궁창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